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문화·교육

조선시대 아버지도 아이를 돌봤다

권세헌 기자 입력 2026.04.27 09:16 수정 2026.04.27 09:16

일기로 살펴보는 조선시대 자녀교육의 일상

한국국학진흥원은 어린이날을 맞아 조선 중기 문인 금난수(琴蘭秀, 1530~1604)의 『성재일기(惺齋日記)』를 통해 조선시대 자녀 교육과 돌봄의 장면을 소개한다. 『성재일기』에는 네 아들 경(憬)·업(????)·개(愷)·각(恪)의 독서와 과거 응시, 스승에게 나아가 배우는 과정이 날짜별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조선시대 아이들의 배움이 집 안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책과 스승, 친족과 지역의 학문 네트워크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생활 기록이다.

책을 읽고, 과거를 준비하고, 어른에게 배움을 구하다

1576년 1월 15일 기사에는 셋째 아들 금개가 이황(李滉)의 손자 이안도(李安道)에게서 『고문선(古文選)』 전질을 빌려 온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해 8월 15일에는 첫째 금경과 둘째 금업이 별시에 응시하기 위해 서울로 길을 떠났고, 9월 20일에는 돌아왔다. 이듬해인 1577년 1월 12일에는 막내 금각이 처음으로 『논어』 대문을 읽기 시작했으며, 4월 24일에는 둘째 금업이 봉화현에 머물며 조월천(趙月川, 조목)에게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後集)의 내용을 물었다. 책을 빌려 읽고, 과거를 준비하며, 친족 어른에게 배움을 구하는 이 장면들은 조선시대 자녀 교육의 일상적 풍경을 보여준다.

아버지가 동행하며 자녀의 학업을 살피다

1580년 9월 29일, 금난수는 막내 금각을 데리고 길을 나섰다. 그러나 며칠 뒤 금각이 학질을 앓아 10월 5일에는 용안역에서 머물러야 했다. 이후 10월 23일부터 금각은 『사략(史略)』 첫 권을 하루 10장씩 외우기 시작했고, 10월 29일에는 첫 권을 마치고 둘째 권으로 넘어갔다. 이는 이동 중에도 자녀의 생활과 학업이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아들이 읽을 책을 아버지가 직접 베껴 쓰다

1585년의 기록은 금난수의 자녀 돌봄이 얼마나 구체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6월 4일, 금난수는 아들 금각이 읽을 『강목(綱目)』을 직접 베껴 쓰기 시작했다. 날마다 7장 또는 10장씩 써 내려갔고, 이튿날부터 금각은 그 책을 받아 하루 15장 또는 17장씩 읽고 외웠다. 금난수는 공무와 제사, 손님맞이로 바쁜 가운데서도 필사를 이어 가 두 달여 만에 일곱 번째 책까지 써 내려갔다. 아버지가 손수 마련한 책을 아들이 읽고 익히는 모습은 조선시대 가정 안에서 이루어진 배움과 돌봄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스승을 찾아 보내며 배움의 자리를 마련하다

1586년 3월 17일에는 금각이 허전한(許典翰)에게 나아가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허전한은 부모님을 뵙기 위해 성산에 머무르고 있었고, 금각은 그곳에서 한 달 가까이 공부한 뒤 4월 11일 집으로 돌아왔다. 자녀에게 적절한 스승과 배움의 자리를 마련하는 일 또한 금난수의 교육 방식 가운데 하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조선시대 자녀 교육이 집안의 훈육에 그치지 않고, 배움의 환경과 인연을 마련하는 방식으로도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성재일기』는 조선시대 아이들이 책을 읽고 과거를 준비하며 스승에게 나아가 배우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이라며, “어린이날을 맞아 전통사회에서도 아이의 배움이 일상의 중요한 관심사였음을 함께 되새겨 보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고타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